손해 보고 낮추고 섬기고… 140년 前 선교사 정신 필요한 때2025-11-14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에서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와 류영모 한소망교회 원로목사가 한국 교회의 역사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5.11.7 /박성원 기자
개신교 원로인 두 목사는 1954년생 동갑으로 개신교 대표적 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5대(류영모 목사), 6대(이영훈 목사) 대표회장을 지냈다. 두 목사는 평소에도 양화진을 자주 찾아 ‘선교사들의 첫 마음’을 되새기고 있다.
−양화진 묘원이라면 무엇이 떠오르는지요.
▲이영훈 목사(이하 이)=“무엇보다 선교사님들의 희생, 땀, 헌신 그것이 녹아 있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그 어느 나라에 이렇게 많은 선교사가 가서 자기 자녀들까지 희생하면서 섬겼을까요.”
▲류영모 목사(이하 류)=“저는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먼저 ‘울컥’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적인 고향이죠. 우리의 정신, 영성, 그런 본질이 그리울 때마다 저는 여기를 찾습니다. 양화진을 찾을 때마다 우리가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지요.”
−이 묘원을 보면 선교사들은 선교 후 귀국한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대부분 원웨이 티켓(one−way ticket)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곳에서 내 삶을 다 바치고 이 땅에 묻히겠다는 마음으로 와서 섬기다 삶을 마친 것이죠. 모든 것이 열악한 한국에 선교사들은 의료, 교육을 먼저 들여왔어요. 서민들 입장에선 병 고치고 공부 가르쳐 주는 분들이 어떻게 왔나 봤더니 ‘예수 믿는 사람’이다, 이렇게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것이지요.”
▲류=“선교사들은 우리에게 근대문명을 선물했지요. 당초 언더우드는 인도, 아펜젤러는 일본으로 가려다가 기도 중에 ‘한국으로 가라’는 부름을 받았지요. 그렇게 한국에 와서 자손 대대로 헌신했고, 고국에 돌아갔다가도 죽을 때엔 한국에 와서 묻히고 싶어 했던 분들이니 참 고마운 분들이죠.”
−지역의 유서 깊은 교회를 취재해 보니 교회 종소리가 그 지역 3·1운동 신호탄이 된 경우도 많더군요.
▲이=“선교사들은 진정한 신앙을 위해선 자유와 독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에선 영국과 아편전쟁이 벌어졌을 때 선교사들이 영국 편을 들었지만 한국에서는 정반대로 한국 편에 서서 독립을 위해 함께 싸웠습니다. 국민들이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 것이 중국과는 다른 큰 차이점입니다.”
▲류=“백정 해방 운동에 앞장선 무어 선교사도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평등 사상을 전파하면서 노예 해방 운동에 버금가는 백정, 여성, 어린이 인권 향상에 나섰습니다. 국민을 돌볼 정부가 없던 시절, 교회가 국민을 돌보면서 민족정신도 일깨웠던 것이 3·1운동 때 교회가 나서게 된 배경이지요."
−광복과 6·25전쟁 이후 한국 개신교는 폐허 가운데에서 희망을 전해줬습니다.
▲이=“기독교는 부활 신앙이기 때문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잿더미 속에서 국민들이 방향을 잃었을 때 기독교는 꿈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런 희망이 모여 1970~80년대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부흥했고, 우리 경제도 일어났지요. 기독교 지식인들이 중심이 돼 민주화 운동에도 앞장섰고요.”
▲류=“교회가 교회답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기둥과 성령의 기둥입니다. 기차의 두 레일 같은 것이죠. 이 레일 위를 한국 교회가 달리면서 1980년대까지 성장했다고 봅니다.”
−현재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 인구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등 종교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습니다.
▲이=“철저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14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그렇게 한국 교회를 높여주셨는데 우리는 물량주의, 교권주의로 분열하면서 사회적 존경을 잃고 리더십을 상실했지요.”
−류 목사님은 어려울 때마다 양화진 묘원을 찾으신다고 했는데 ‘양화진 정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류=“십자가 정신입니다. 공격적인 십자군 정신이 아니라 스스로 죽어지는 정신, 손해 보는 정신, 낮아지는 정신, 섬김의 정신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이=“여기 잠들어 계신 선교사들은 한국에 와서 스스로 낮추고 희생하고 섬겼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세계적 기독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본질로 돌아갈 때 비로소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존경받는 기독교로 거듭나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국의 100년 교회를 가다’에 실린 전국의 100년 교회들.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