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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단원高 옆 재래市場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2014-10-11

여의도순복음교회 신도 1200명, 넉달만에 보성市場 들러 이웃 잃고 손님 끊긴 상인 위로

2시간 동안 장바구니 한가득 "이제야 사람냄새가 나네요"



 

"오징어 두 마리 5000원, 산낙지 세 마리 1만원입니다. 요즘이 제철인 싱싱한 놈들이에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보성재래시장(옛 라성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신현숙(54)씨의 목소리에 모처럼 힘이 들어갔다. 가게 앞에 몰려든 주부 10여명이 한꺼번에 주문을 하자 잠시 손이 빈 이웃 건어물집 청년이 와서 포장을 거들었다. "총각 솜씨가 영 서투르네! 훈련 좀 더 해야겠다~" 손님들의 짓궂은 농담에 신씨가 웃으며 말했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시장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보고 이렇게 왁자지껄 웃어본 게…."



10일 오후 안산 보성시장은 추석 대목처럼 흥청거렸다. 오후 2시쯤 전세버스 26대가 시장 앞에 속속 멈춰 서더니 거기서 내린 1200명이 시장통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들이 장바구니를 채우면서 '사랑의 싹쓸이'가 시작됐다. 이영훈 담임목사와 동행한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신도들이었다. 이날 낮 12시 여의도에 모인 이들은 세월호 참사 여파로 실의에 빠진 안산 상인들에게 작은 보탬이라도 되겠다며 두 시간을 달려 이곳을 찾았다. 아내 손을 잡고 온 60대 남성도 있었고, 80대 어머니를 모시고 온 여성도 있었다. 100여개 점포가 늘어선 시장 안은 발 디딜 틈 없었다. 순댓국집과 분식집은 식사를 하려는 이들이 몰리면서 긴 줄이 늘어섰다. 상인들은 "매상을 떠나 외로운 우리를 이렇게 찾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br>10일 오후 경기 안산 단원구 보성시장에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신도 1200명이 단체로 장 보기에 나섰다. 가게 100여곳이 들어선 보성시장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2㎞ 거리에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침울한 분위기였던 시장은 명절 대목을 맞은 듯한 분위기였다.<br>
 


10일 오후 경기 안산 단원구 보성시장에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신도 1200명이 단체로 장 보기에 나섰다. 가게 100여곳이 들어선 보성시장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2㎞ 거리에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침울한 분위기였던 시장은 명절 대목을 맞은 듯한 분위기였다. /김지호 기자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6개월은 이곳 상인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학생 250명(사망 245·실종 5)을 잃은 안산 단원고가 시장에서 불과 2㎞ 거리다. 단골 중엔 아이를 잃은 부모도 많았다.



시장 내 식당을 하는 김봉연(45)씨는 "사고 첫날 TV를 보고 다들 머리가 멍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하루는 사고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가게에 와 눈물을 꾹꾹 참으면서 소주를 들이켜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먹먹하던지…"라고 말했다.



생선 가게 신현숙씨는 "오랜만에 가게를 찾은 단골손님에게 '어디 갔다 왔느냐. 왜 이렇게 살이 빠졌느냐'고 물었다가 '딸이 사고를 당해서요'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그때 생각이 나는지 신씨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보성시장 상인들은 참사 직후 합동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일부는 봉사 활동에도 나섰다. 하지만 대부분 매상이 반 토막 나면서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했다. 김중인(56) 상인회장은 "여기서 소금 장사 30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라고 했다.



참사 42일째인 지난 5월 27일. 첫 번째 '사랑의 싹쓸이'가 시장을 덮쳤다. 장바구니를 든 여의도순복음교회 신도 1500명이었다. 교회 여기저기서 '안산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누군가 '재래시장 단체 장보기'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장보기에 앞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물건 값을 깎지 않는다' '교회나 종교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저 "많이 파시라"며 상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1만원짜리 새우젓을 10통씩 사 가기도 했고, 집에서 가져온 배낭에 채소를 한 아름 담아 가기도 했다. 신도들이 쓴 돈은 약 5000만원이었다. 교회에선 장보기용으로 1인당 1만원씩 나눠줬지만 각자 2만~3만원씩을 더 쓴 셈이었다.



그날 이후 5개월 만에 신도들과 다시 만난 상인들은 "또 오셨네요"라며 반갑게 맞았다. 시장 떡집의 대표 메뉴인 모시떡은 한 시간 만에 품절됐다.



떡집 주인 김모씨는 "평소 매출의 10배는 판 것 같다"면서도 "단원고 바로 앞 가게들이 더 어려운데 나중에 시간 되실 때 거기도 꼭 들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젓갈을 팔던 한 상인은 "장사를 떠나 이제야 사람 냄새 나는 시장 같다"며 웃었다.



신도들의 장보기는 오후 4시까지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주부 문순자(69)씨는 "세월호 사고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와 헌금뿐이었는데 이렇게 안산에 와서 어려운 분들을 도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영훈 담임목사도 버섯·고구마 등을 집어들었다. 이 목사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상인들이 다시 웃음을 되찾는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 이곳을 찾으며 안산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선 생선 비린내, 채소에 묻은 흙내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