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 언론 뉴스

[특별 인터뷰]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의 ‘따뜻한 리더십’ - “ 감사와 긍정 에너지를 모아서 ‘ 절망사회’를 ‘희망사회’로 만들자” 2015-04-30

 


[특별 인터뷰]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의 ‘따뜻한 리더십’ - “ 감사와 긍정 에너지를 모아서 ‘ 절망사회’를 ‘희망사회’로 만들자” 


세월호 참사 이후 개신교계 대표로 희망 나눔 펼치며 사회참여 본격화 … 교회 재정 1% 통일기금 적립운동 제안, 통일실천운동 발 벋고 나서기도 


 


세월호 참사는 종교계가 은둔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기도 한 듯하다. 지난해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장 먼저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모든 교회와 성당, 법당의 기도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상처를 보듬는 데 모아졌다. 종교와 종교인이 아픔에 빠진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모색했다. 고민은 생각에 멈추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졌다. 팽목항과 안산시, 광화문 등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기독교계의 세월호 수습활동을 주도했다. 이영훈 목사(60·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가 앞장섰다. 이 목사는 국내 최대 교회연대 조직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대표회장을 맡고 있다.

 


 


















▎이영훈(사진)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는 한국기독교총연합 대표회장을 맡아 개신교계와 사회의 일치운동을 이끌고 있다. 그는 정치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를 향해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를 1년 앞둔 4월 7일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이 목사를 만나보았다. 평일인데도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세미나와 예배를 드리는 찬송가 소리가 성전을 가득 메웠다. 1층 당회장실은 이 목사에게 상담을 구하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목회자만 수백 명이 넘는 초대형 교회 수장의 시간은 말 그대로 분초를 쪼개도 부족해 보였다.



이 목사와 인터뷰는 세월호로 시작해 통일과 사회 통합 등 종교적 색채보다 사회적 현안이 중심 화두가 됐다. 뜻밖에도 이 목사의 말은 선이 뚜렷했다. 대상에 이르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다 소멸하고 마는 ‘불특정다수’를 향한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치권과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간단하고 또렷했다. 기독교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체로 온건보수 성향이다. 정권에도 우호적이다. 뚜렷한 색깔을 갖고 정치에 참여하길 자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짙다. 그러나 이 목사는 그런 시선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세월호 침몰사건이 일어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한국 기독교계의 대표로서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어떤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으면 불안감도 있고, 마음속에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세월호가 그렇다.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랄까?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대처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 미숙했던 부분이 많았다. 신속한 결단과 후속조치가 있었어야 했다. 1년이 지났는데도 국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속 시원하게 여길 만한 분명한 답이나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 왜 아직도 유가족이 진상규명을 요구해야 하나?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할 문제다.”



‘섬김’과 ‘양보’ 통해 세월호 절망 벗어나야



















▎1.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독교인들이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거리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 2.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와 신도들이 안산의 전통시장에서 과일을 구입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경기 침체를 맞은 안산 시장 살리기의 일환이다. / 3. 세월호 참사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희생자가운데 현재까지 246명의 시신이 수습됐으나 4명은 실종 상태다.



이 목사는 지난해 9월 세월호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한기총 대표회장의 자격으로 정치권의 양보와 결단을 촉구했다. 한기총의 보수적 성향과 그동안 친여 행보를 봤을 때 이례적인 발언이었다. 세월호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몰아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로 해석된다. 대신 그는 ‘섬기고 양보하는 교회’를 강조했다. 지난 1년 동안 이 목사와 순복음교회가 지나온 행보도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세월호 사고 이후 1년 동안 기독교계에서도 교회 차원에서 많은 역할을 찾고, 실천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비관적으로 문제점만 지적하는 건 옳지 않다. 기독교 신앙인은 절망만 얘기할 게 아니라 그 속에서 꿈과 희망을 찾아내야 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순 없지 않는가. 어떻게 이 사회를 회복하느냐, 무엇부터 실천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우리 교회는 실천방법으로 ‘안산 희망나누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뒤 안산시에 가보니 지역경기가 다 죽었더라.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상인들이 추모 현수막을 걷어냈을까. 상인들도 피해자다.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가 불거지니까 피해자들끼리 갈등이 생긴 거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었다.



2014년 5월부터 10월, 12월, 올해 4월까지 네 차례 교인들과 함께 안산을 찾아갔다. 지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자는 취지에서다.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가깝고 지역에서 규모가 제법 큰 전통시장인 보성시장을 방문지로 택했다. 가봤더니 시장에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이 드물었다.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태였다. 한 번 갈 때마다 1천명에서 많게는 1200명이 방문해 식당을 이용하고 시장에서 각자 물품을 구입했다. 물건을 살 때는 깎지 않고 정가로 사도록 했다. 자칫 전도활동으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교회 얘기는 일체 하지 말도록 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안산시는 집단적 공황에 빠져 있었다. 슬픔에 찬 고요함이 거리를 점령했다. ‘살아 움직이는 게 미안하다’고 할 만큼 시민들의 자책감은 컸다. 추모의 열기가 고조될수록 상점과 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당시 안산시의 지역경제는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시청을 비롯한 모든 관공서의 외부 회식이 중단됐고 시민들도 외출을 자제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아야 하는 상인들이 “IMF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안산시가 세월호 사고 이후 3개월간 지역 상권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적게는 10%, 많게는 50% 이상 매출 감소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6월 한 달간 안산지역 소상공인 휴·폐업률은 무려 37%에 달했다. 순복음교회의 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는 안산의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데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단일 교회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가 등록돼 있다. 순복음교회 전체 신도 수는 100만 명이 넘는다.



지역 상인들 입장에선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한 기분이었을 것 같다.



“첫 방문 때에는 사실 상인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아마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방문하니 무척 반가워하고 고마워하더라. 지역 주민들과 약속했다. 세월호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계속 찾아오겠다고. 일회성이 아니라 유가족들이, 또 우리 사회가 마음속에서 고통을 모두 내려놓을 때까지 희망 나눔 프로젝트는 계속될 거다.”



안산의 전통시장 이외에 세월호 관련 다른 활동을 펼친 건 없었나?



“우리 교회 산하에 ‘굿피플’이라는 국제 구호개발 NGO(비정부기구)가 있다. 이 단체를 통해 이스라엘의 심리치료 전문 단체인 이스라에이드(IsraAID)와 협력해 약 두 달간 안산과 진도에서 이스라에이드의 심리치료 전문가 14명이 세월호 유가족과 학생 등 직간접 피해자들의 심리치료를 진행했다. 또 사회복지사들을 대상으로 한 치유·복원을 위한 전문가 교육 과정을 259시간 동안 운영해 2890명이 교육을 받아 이 지역의 학생들에게 미술치료 등 프로그램을 진행했다.(이스라에이드는 이스라엘의 정신과 교수들로 구성된 단체로, 미국 9·11 테러와 일본 대지진 등 대형 재난현장에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해온 세계적인 심리치료 전문가 그룹이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직접 지원하는 건 아니지만 유가족을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변호사들 중에서도 기독교인이 꽤 있다. 유가족 변호사들이 70~80명 정도 되는데 이분들은 드러내지 않고 유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유가족 중에는 가정형편이 어렵다 보니 법적으로 가족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아직은 쉬쉬하지만 언젠가 문제가 될 거다. 그런 여러 가지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많은 변호사가 애쓰고 있다.”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 이야기 들어야”



















▎순복음교회에는 평양 대동강구역에 심장전문병원인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을 2007년에 착공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현재는 공사가 중단됐다. 남북 실무자들이 병원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종교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 부활절은 성탄절과 함께 가장 중요한 절기다. 4월은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의 절기였다. 그러나 올해부터 한국 기독교계의 부활절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더해졌다. 바로 ‘나눔’과 ‘희망’이다. 한기총은 4월 5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진행한 부활절 특별예배를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과 장애인, 다문화가정, 북한 이탈자 등 소외 계층을 초청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이날 서울 용산구 중앙루터교회에서 열린 부활절 새벽예배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위로했다.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도 ‘곁에 머물다’란 주제로 부활절 예배가 진행됐다. 한국천주교회도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한 명동성당 부활 미사를 통해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과 유가족의 치유를 기원했다.



한기총 회장으로서 이번 부활절을 맞는 심정이 남달랐을 듯하다.



“기독교는 권면과 위로의 종교다. 신앙적으로 유족을 위로하고 사회가 바른 길로 가도록 권면하는 게 기독교의 역할이다. 부활절에 곳곳에서 부활절예배를 통해 세월호 사건을 기리고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했다. 16일에는 안산지역 교회들이 함께 세월호 1주기 특별 예배를 드린다.”



순복음교회는 성도 수가 100만 명이 넘는 초대형 교회다. 커다란 조직의 운영자의 경험을 토대로 세월호 사건의 수습 과정을 평가해달라.



“세월호 참사는 총체적 부실의 결과다. 제2의 삼풍백화점 사고라고도 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사고가 터진 게 아니라 사고가 일어날 만한 모든 여건이 마련되었으니까 일어난 것이다.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두고두고 비판을 받을 거다. 유가족이 진상규명을 1년째 요구해오고 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즉시 다 해결됐어야 하는 일들이 1년째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책임은 우선적으로 정치권에 있다. 당리당략에 이용하지 말고 피해자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게 뭐든 수용해주는 관용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힘을 가진 사람은 힘없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고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그러면 유족들이 삭발까지 하는 일이 생기겠나? 그런 조치와 분위기가 지금이라도 빨리 이뤄져야 하는데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선체 인양 문제는 또 어떤가? 그 문제는 벌써 결론이 났어야 했다.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인양을 고려해보겠다고 하면 앞으로 또 1년이 지나고 만다. 수색을 중단했을 때 이미 결론을 내렸어야 할 일을 아직까지도 고려해보겠다고 하니 이해가 안 된다. 모든 것은 적절한 때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유증이 나타난다. 곪았을 때 빨리 고름을 짜내고 치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곯은 곳이 썩어서 상처가 깊어지고 도려내야 하는 더 큰 수술을 해야 한다. 지난 1년간 대한민국이 겪은 절망과 고통은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큰 피해다. 제발 정치인들이 자기 당의 위치에서 판단하고 일하지 말고, 국민의 위치에서 일해달라.”



세월호 얘기로만 어느덧 약속된 시간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현실에 대한 아쉬움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았고, 계속해도 끝이 없을 듯했다. 이 목사의 메시지는 정치권을 향했다. 시종일관 ‘정치권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했다.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종교 지도자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보수적 성향이 짙은 한기총 대표라는 직책을 감안해보면 다소 의외의 발언이었다. 더욱 의외였던 건 이어진 주제였던 ‘통일’에 관한 그의 생각이다.



통일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알고 있다.



“저희 가족도 월남한 가족이다. 할아버지께서는 평양의 서문 밖교회(남한 최초 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세운 고 강신명 목사가 전도사로 시무했었다)를 섬기시다가 공산화된 뒤에 더 이상 교회를 다닐 수 없게 되자 1948년 6월에 해주에서 고깃배를 타고 온 가족이 월남했다. 어머니는 황해도 분이시고 외가는 목회자 가정이었다. 고모 가족이 아직 평양에 살고 있다. 통일은 월남 가족의 공통된 꿈이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목회자로서 교회가 통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5만 교회 재정 1%를 통일기금으로 조성



















▎평양에 들어설 예정인 지상 7층짜리 조용기심장전무병원의 조감도.



이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에 취임한 뒤 통일기금 마련을 위한 교회 예산 1% 적립운동을 교계에 제안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미 실시하고 있다. 종교계에서 따로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독교계 전체가 동참하면 상당한 금액을 모을 수도 있다.



이런 운동을 제안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누구나 통일을 얘기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하겠다는 계획은 내놓지 못한다. 사실 통일비용을 마련하는 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만 이런 부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미약하다. 교회가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다가 이 방법을 생각해냈다. 각 교회가 예산의 1%를 떼어내서 갖고 있다가 통일된 뒤에 모아서 필요한 곳에 쓰자는 취지다. 저희 교회는 올해부터 적립을 시작했다. 순복음교회의 1년 예산의 1%면 약 10억원이 된다. 남한에는 5만5천 교회가 있다. 모든 교회가 1%씩 적립을 한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거다.”



적립금은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 계획인가?



“한 곳에 모아서 관리하면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와 제도가 필요하고 자칫 신뢰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개별 교회에서 직접 관리하되 향후 통일이 되거나 구체적인 용도 등이 정해졌을 때 모아서 집행하는 방식으로 하면 좋겠다. 우선 우리 교회가 시작했지만 각 교단에 제안해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해방 후 북한에는 3500 교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교회 두 곳과 성당 한 곳만 남아 있다. 통일이 되면 무너진 교회를 회복하는 데 큰 돈이 들 것이다. 또 한국에 처음 들어온 외국 선교사들이 그랬듯이 북한사회가 개방된다면 의료와 교육사업을 진행하면서 북한 주민을 섬기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재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 밖에 다른 북한 지원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시초는 1958년 조용기·최자실 목사가 서대문구 대조동에 개척한 허름한 천막교회다.(사진) 지금은 세계에 400여 개 지교회를 거느린 대형 교회로 성장했다



“우리 교회에서 평양에 심장 전문병원을 짓고 있는데 7년째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1㎞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남북간의 갈등 때문에 짓다 말다를 반복돼서 8층 건물의 뼈대만 흉물처럼 남아있다. 통일부에서 겨우 허가를 받았고 대통령께도 인도주의적 차원의 사업은 진행하자고 간곡히 요청해서 허가를 받아냈는데 이번에는 북한에서 남측을 믿지 못하겠다고 해서 아직 공사가 재개되지 않고 있다.”



평양 대동강구역 동문2동에 들어서게 될 ‘평양조용기심장 전문병원’은 2007년 12월 4일 착공했다. 지하 1층 지상 7층에 260개 병상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다. 건립비용만 200억원 정도다. 병원이 완공되면 남측 의료진 60여 명이 상주하고 예배실도 갖춘 기독병원 형태로 운영된다. 당초엔 2009년 완공을 계획했는데 공사가 중단되면서 완공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북한은 자기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인도적 차원의 지원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이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와중에도 유일하게 진행되고 있는 게 결핵사업이다. 북한에는 수십만 명의 결핵환자가 있는데 결핵약 복용을 중단하면 내성이 생겨 평생 고칠 수가 없다. 그래서 유진벨재단을 통한 결핵약 지원 사업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이게 남북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다.



얼마 전에는 북한에서 25억 그루 나무심기 사업을 요청해 왔다. 미국의 기독교 단체를 통해 한국 전체 교단이 참여해 돕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 200개 군이 있는데 모든 곳에 진료소를 세우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 곳당 약 5만 달러가 들어간다. 우리도 몇 군데 후원을 하고 있다.”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무엇보다 정치권의 결단이 중요하다. 개성공단 임금문제만 해도 그렇다. 합의 없이 못 올리게 돼있 고, 상한선이 5%까지인데 북한에서 5.1%를 올렸다. 돈으로 따지면 몇 백 원 차이다.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기싸움을 하는 거다. 내가 만났던 통일부 고위 인사는 ‘북측을 믿을 수 없다’고 하더라. 이 상태가 한참 가겠구나 싶었다. 북한도 나름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쉽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따라오진 않을 것 같다. 우리가 통일대박론을 얘기하면서도 실제 협상테이블에선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남북의 경제력 차이가 약 40배 이상 난다고 한다. 우리가 통 크게 양보하면 어떨까? 북측에서 떼쓴다고 덩달아 일희일비하지 않고 양보할 건 양보해서 결국 통일되면 다 우리 것이 되고 우리 이익이 되는 거 아닌가? 작고 사소한 일들로 감정싸움하고 대립하다간 될 일도 꼬일 수밖에 없다. 기독교에는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진다’는 성경 말씀이 있다. 우리가 먼저 낮추고 품고 섬기면 바라는 대로 이뤄지고 다 얻을 수 있다. 저는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반대하되, 북쪽 주민들은 동포가 아닌가? 체제와 동포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북한을 돕는 건 헐벗고 굶주린 우리 동포들을 돕는 일이다. 우리 정부가 원칙적인 얘기만 하지 말고 인도적 차원의 문제들은 과감히 풀었으면 좋겠다.”



보수와 진보 아우르며 ‘일치운동’ 주도



















▎순복음교회의 본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등록 교인이 49만7천 명에 이른다.



이 목사는 이념적 치우침보다 화합을 중시한다. 2008년 5월 조용기 목사에 이어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으로 취임한 뒤 가장 먼저 순복음교회의 예산 집행 내역을 공개했다. 대형 교회가 회계를 공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 분열됐던 교회 내부 갈등도 이 목사의 취임과 함께 수그러들었다. 그는 2014년 9월 한기총 대표회장에 선출됐다.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템플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한세대 교수와 신학연구소장, 워싱턴순복음 제일교회 등 주요 교회를 담임했고 한때 진보적 기독교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도 지냈다. 보수와 진보를 오가는 그의 이력 덕분에 이 목사는 수많은 교단과 단체로 분열된 한국 기독교 통합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한기총 대표회장으로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있나?



“한기총의 내부 갈등 때문에 한국교회연합이란 조직이 생겼다. 그걸 포용해서 하나로 만드는 게 과제다.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약점은 분열이다. 교회의 분열은 우리 사회에 갈등과 대립을 조장한다. 한국 교회의 일치에 앞장서려고 한다. 진보와 보수, 노와 사, 여와 야로 갈라져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한국 교회가 앞장서서 하나 되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



가진 자들의 솔선수범도 필요하다.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내놔야 한다. 우리 교회는 예산 3분의 1을 구제를 위해 쓰고 있다. 미국 사회가 건강함을 유지하는 건 재벌들이 스스로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문화가 정착돼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공개하고 내놓음으로써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앞으로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역도 중점에 두고 있다.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인권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하다 다쳐도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이들이 많다. 다문화에 대해 교계와 정부, 사회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교회는 안산에 다문화선교센터를 설립했다. 한국으로 시집오는 다문화여성이 1년에 2만5천 명쯤 된다고 한다. 그중 8천 쌍이 이혼한다. 세 가정 중 한 가정이 이혼하는 건데, 거기서 태어난 아이들은 결국 버려지고 만다. 시골 산간벽지의 지역아동센터에도 보호받는 아이가 많다. 저출산 시대에 버려지는 아이가 많다는 건 아이러니다. 프랑스에선 아이를 낳으면 철저하게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고 권리가 보장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저출산 대책에 돈을 엄청 쏟아부으면서도 이미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무관심하다. 태어나자마자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거다. 미혼모나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복지예산을 써야 한다.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근본적인 생활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사회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면 나중에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목사는 담임목사에 취임할 때, 전 교인의 투표로 추대됐다. 대형교회의 세습 관행이 여전한 한국 개신교의 현실에 비춰볼 때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더구나 이 목사의 취임 직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 원로목사와 가족을 둘러싼 분란에 휩싸여 있었다. 이 목사는 유연한 리더십으로 내분을 말끔히 씻어냈다. 그가 취임한 뒤 감소세였던 등록 교인이 2만 명가량 늘어났다. 이 목사는 열 살 때부터 순복음교회를 다니며 조 목사의 신앙 전통을 물려받았다. 조 목사와 그가 스스로 서로를 ‘영적 아버지’, ‘영적 아들’이라고 할 만큼 두 사람의 신앙적 교분은 깊다.



















 



이 목사가 취임한 뒤에는 교회 재정을 완전 공개한 데 이어 순복음교회 전 재산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재단법인 여의도순복음연합의 기본재산으로 등록했다. 목사의 교회 세습이나 사적인 이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이런 선구적 행보 때문에 기성 교단으로부터 적지 않은 견제를 받아왔지만 이제는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 목사가 전하는 메시지 속에는 ‘감사’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절대긍정’과 ‘절대감사’를 인생의 신조로 삼고 있다. 이는 목회활동의 핵심 지침이기도 하다. 사단법인 ‘아름다운동행’의 감사운동추진위원장의 직책을 맡아 감사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긍정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긍정의 메시지를 통해 교인들의 삶을 변화시켜 왔다. 한국 사회가 발전하려면 부정의 굴레를 벗어나 긍정의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저서 <감사, 행복의 샘>에서 그가 밝히듯 “절망이 깊어질수록 희망의 시간은 더 가까이 와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는 부정과 절망이 뒤덮은 이 시대에 우리 모두가 귀담아들어야 할 화두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 사진 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