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목사·북달 랍비 회견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1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미국의 앤젤라 워닉 북달 랍비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성직자와 미국 유대교를 상징하는 목회자가 한국과 이스라엘, 기독교와 유대교의 화합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진 셈이다. 국민일보는 그간 반유대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노력과 기자회견에서 두 종교 지도자가 했던 발언들을 소개한다.
앤젤라 워닉 북달(왼쪽) 랍비가 1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유대교와 한국교회의 협력 방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무대에 선 앤젤라 워닉 북달 랍비는 직접 기타를 연주하면서 아리랑을 불렀다. 기자회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미국인으로 자랐지만 유대인의 삶을 선택한 여성. 회견장에 모인 이들은 북달 랍비의 독특한 인생 역정을 알기에 노래가 끝나자 큰 박수를 보냈다.
1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의 주인공은 북달 랍비와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였다. 기자회견은 두 종교의 지도자가 화합의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이면서 이날 서울대에 개소한 이스라엘교육협력센터를 소개하는 성격도 띠었다. 진행은 모금 컨설팅 업체인 도움과나눔 최영우 대표가 맡았다. 다음은 기자회견 주요 내용.
-한국교회와 미국 유대교의 지도자가 만났다. 소감이 궁금하다.
△이영훈 목사=한국과 이스라엘은 특별한 관계다. 양국 모두 같은 해(1948년)에 정부를 수립했다. 이스라엘이 아시아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도 한국이다. 한국이 겪는 저출산 문제의 해법도 이스라엘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명대 아래로 떨어졌지만 이스라엘은 세계 최고 수준인 3.0명(2021년 기준)이다. 한국이 마주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데 큰 힘이 돼줄 수 있는 분이 북달 랍비라고 생각한다. 북달 랍비는 한국인 미국인 유대인의 정체성을 모두 지닌 세계적 리더다. 아울러 서울대 이스라엘교육협력센터를 통해 양국 관계가 돈독해지길 바란다.
△북달 랍비=정말 영광스러운 자리다. 한국은 내가 태어난 나라이자 어머니의 조국이다. 이스라엘은 내게 영적인 조국이다. 한국에 이스라엘교육협력센터가 생긴 것도 영광스럽다. 이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특별하다. 두 나라는 공통점이 많다.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교육열이 높다.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것도, 각 나라의 문화를 말살시키려는 시도가 많았던 것도 비슷하다. 그런 만큼 서로 배워야 할 것이 많을 것 같다.
-한국과 이스라엘, 한국교회와 유대교의 협력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이 목사=한국교회는 그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교회에 대한 관심은 더 떨어졌다. 유대교엔 기독교의 뿌리가 있다. 차이점도 있지만 공통점도 많다. 서로 깊은 신학적 대화를 나눈다면 발전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두 종교가 서로가 가진 장점을 배워나갔으면 한다.
△북달 랍비=사실 유대교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긴 힘들다. 극단적 방식으로 신앙을 드러내는 ‘정통파 유대교’가 있고, 이보다 덜한 ‘보수파 유대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띠는 ‘개혁파 유대교’도 존재한다. 하지만 같은 점은 있다. 공통의 텍스트(성경)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에게 유대교의 특징으로 설명하고 싶은 게 3개 있다. 하나는 우리가 신의 형상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믿는다는 점이다. 모두가 하나님의 모습으로 세상에 왔다는 것, 그것은 인간에게 위와 아래라는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현대 사회에서 ‘안식’이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물질주의에 휘둘리면 삶의 의미를 잊기 쉽다. 안식일은 인생의 목표가 물질의 축적에 있지 않음을 되새기게 해주는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유대교의 시조로 통하는) 아브라함이 이방인이었듯 유대인들은 자기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여긴다. 이방인이기에 외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들이 유대인이 가진 이들 3개의 특징에 주목해줬으면 한다.
-한국교회가 유대교 전통에서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 목사=북달 랍비가 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 인상적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주일이면 너무 바쁘다. 교회에서 봉사하느라 평일보다 두세 배 많은 힘을 쏟곤 한다. 주일에 교회에서 봉사하느라 탈진하는 기독교인도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에 같은 무게의 인권을 가진다고 강조한 대목도 유대교의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유대인의 삶의 방식 중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
△이 목사=교육 문제를 거론하고 싶다. 한국 교육의 목적은 오로지 대학 진학에만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대학 진학보다는 가정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북달 랍비=안식일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안식일에 유대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TV도 보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가족끼리 시간을 보낸다. 이스라엘의 출산율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여기엔 안식일의 분위기도 일조하는 것 같다. 모든 일에서 벗어나 가족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시간이니까 말이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협력이 양국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북달 랍비=나는 나의 두 조국(한국과 이스라엘)이 현재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1948년에 각각 정부를 수립한 두 나라엔 천연자원도 거의 없다. 오직 사람만이 자원이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다. 하지만 나스닥 상장 기업 숫자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나는 이것이 하브루타(짝을 지어 토론하고 논쟁하는 교육법)와 같은 교육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창의성과 미래를 내다보는 한국인의 전략적 사고가 합쳐진다면 불꽃이 튈 정도로 놀라운 결과가 생겨날 수도 있다.
△이 목사=K컬처가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데 한국의 기초과학 분야는 취약하다. 노벨상 수상자도 아직 없다. 유대인은 정반대다. 양국의 네트워크가 공고해지면 기대할 수 있는 게 많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공통점으로 디아스포라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목사=이스라엘이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전쟁이 나면 외국에 있는 이스라엘의 많은 젊은이들이 고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한다는 점이다. 놀라운 애국심이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디아스포라 문제에 소홀했던 것 같다. 그들이 고국에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주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북달 랍비=나는 한인 디아스포라이면서 유대인 디아스포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자녀에게 한국 문화를 경험하게 해준 것은 한국 음식과 한국의 전래 동화 정도밖에 없었다. 반면 유대인 문화는 많이 경험하게 해준 것 같다. 아이와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가 되면 함께 촛불을 밝히곤 한다. 한인 디아스포라들에게도 정체성을 되새길 수 있는 예식이나 그런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 정세가 불안하다.
△북달 랍비=지금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미국의 유대인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이스라엘은 자국민의 생존을 위해서, 안전을 위해서 싸울 권리가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존엄을 지키며 살 권리가 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팔레스타인의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만든 건 하마스다. 전쟁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안전과 존엄성도 존중받아야 한다.
-기독교와 유대교, 두 종교 지도자의 만남이 가진 의미를 자평한다면.
△이 목사=서구 기독교에서는 유대교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한국교회는 상대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유대교를 대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북달 랍비=유대교와 기독교는 자매 같은 관계다. 기독교와 한국교회에 깊은 연대감과 유대감을 느낀다. 우리는 이어져 있다. 연결돼 있다. 이스라엘은 현재 우리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한국이 친구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에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
박지훈 기자(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