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다름’ 존중하며 화합과 평화의 길 탐색
ㆍ종교지도자, 스페인 성지순례
“마음을 합해 평화가 공존하고 머지않은 미래에 평화통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다스려주시고 힘을 모아주소서. 순례의 여정에 있는 저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우리 사회와 국가, 각 종단의 공동체를 위한 유익하고 의미 있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모든 기도가 각자가 믿는 절대자의 힘으로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지난달 27일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자리한 세비야 대성당에서는 작은 기도 소리가 울렸다. 이웃 종교 체험 성지순례에 나선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의 종교를 넘어 지그시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지난달 26일 유교 어윤경 성균관장과 천도교 박남수 교령,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천주교 주교회의 김희중 의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영훈 대표회장(왼쪽부터) 등이 이슬람의 역사가 숨쉬는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을 찾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기도를 부탁하자, 천주교 주교회의 김희중 의장(대주교)이 이번 성지순례와 평화를 위해 기도한 것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영훈 대표회장과 천도교 박남수 교령, 유교 어윤경 성균관장이 함께했다.
서로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가 되어 기도하는 모습 속에 은은하고 따뜻한 평화가 느껴졌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이해하고 기꺼이 공존하며 소통할 때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다종교 한국 사회에서 종교 간 화합을 위해 만들어진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대표회장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는 지난달 24~29일 5박6일간의 일정으로 스페인 성지순례를 떠났다. 2007년 시작해 국내뿐 아니라 로마와 러시아, 터키 등 세계 종교문화유적지를 다니며 각국의 종교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올해는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이지만 이슬람교 문화가 궁전과 대성당 곳곳에 남아 있는 스페인의 성지들을 찾았다. 알함브라 궁전과 세비야 대성당, 가톨릭의 총본산인 톨레도 대성당 등은 전쟁으로 인한 피의 역사가 담겨있지만 이슬람교도 등 다른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며 공존의 가치를 전하는 의미 있는 곳들이다.
이웃 종교 성지순례 중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을 찾은 종교지도자들이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은 방문 첫날인 25일 스페인의 안토니오 마리아 로우코 발레라 추기경을 만나 환담도 나눴다. 한국은 다종교 사회로 50여개의 종교와 1000개에 가까운 종파가 있지만 종교 간 갈등 없이 화합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안토니오 추기경은 흥미로워했다.
안토니오 추기경은 “한국의 정통종교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덕분일 것”이라며 “가톨릭은 타종교에 폐쇄적이다가 50년 전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다른 종교와 다른 문화에 개방을 시작해 현재에 이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토니오 추기경은 “종교가 평화를 모으고 있다”고 했다. 자승 스님은 “평화와 생명 존중, 구원은 모든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세계 평화와 함께 서로 다름을 존중하면서 가자는 게 이번 성지순례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라나다에 위치한 알함브라 궁전을 비롯해 세비야 대성당 등을 순례하며 종교 지도자들은 서로의 생각을 경청했다. 특히 최근 프랑스에서 발생한 IS 테러 등 종교를 내세운 갈등을 비롯한 세계 현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영훈 한기총 대표회장은 “마하트마 간디는 타종교에 대한 이해가 폭넓은 사람으로, 인도가 강대국인 영국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비폭력 무저항의 평화적 운동 때문이었다”며 “폭력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허용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작은 폭력은 큰 폭력을 유발하고 큰 폭력은 전쟁을 불러온다”면서 “베트남 전쟁 참전 당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목사님 말씀처럼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은 안되며 시위하는 측이나 이를 진압하는 정부 모두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면서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해 있는 갈등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어윤경 성균관장은 “마음은 말을 통해 나오고 말을 통해 선도 악도 행해진다. 말 한마디가 전쟁을 부를 수도, 평화를 부를 수도 있다”며 “종교의 힘을 빌려 양심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남수 교령은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원인은 양극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힘없는 사람들이 평화롭다고 할 때 진정한 평화가 오는 것이므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역지사지’해서 어려운 이들을 이해하고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