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248㎞의 분단선 중 유일하게 철책이 걷힌 곳. 경기도 파주 진서면 공동경비구역(JSA) 내에 위치한 남·북의 낮은 막사들은 추위가 주춤한 날씨에도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공동경비’라는 말 그대로 남과 북의 협력을 전제로 한 지역이지만 지척에서 마주보는 양측 병사의 시선은 차가웠다. ‘긴장된 평화’를 유지 중인 이곳을 22일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찾았다. 성탄을 앞두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구현한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이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임원과 실행위원 80여명은 판문점을 견학하고, 육군 1사단 JSA경비대대 장병들과 성탄예배를 드렸다.
판문점 내에 견학이 허용되는 장소는 한정돼 있다. 대표적인 곳은 군사분계선 위에 설치된 5곳의 조립식 막사들이다. 한기총 관계자들은 그 중 장성급 회담이 이뤄지던 T2막사를 찾았다. 북의 지속적인 도발로 2009년 3월 이후에는 회담이 진행된 적이 없다. 이 회담장은 남북에 걸쳐 놓여 있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공식적으로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다. 회담장 안에서 군사분계선은 효력이 없지만 내부 구조물들은 분단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중앙테이블 위를 가로지르는 마이크 선이 남과 북을 극명하게 구분 지었다. 통제에 따라야 하기에 이곳에서 따로 모여 기도하거나 예배를 드리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목회자들은 각자 선 자리에서 북한의 복음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로 예배를 대신했다.
성탄예배는 판문점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JSA교회에서 열렸다. 이 교회는 6·25 전쟁 직후 미군이 막사에서 예배를 드리던 것에서 출발했다. 2004년 JSA의 경비업무가 한국군으로 이관된 뒤 한국병사들을 위해 JSA교회가 설립됐다. 현재 건물은 서울 영락교회(이철신 목사)의 후원으로 2010년 건축됐다. 예배당 전면에는 한반도 지도가 새겨져 있다.
예배에서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를 제목으로 설교한 이영훈 대표회장은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처음으로 들은 이들은 밤새 양을 지키던 목자들로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며 “오늘날 예수께서 오신다면 밤낮없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 헌신하는 장병들이 목자들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회장은 “절망과 탄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쁜 소식”이라며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크리스천들은 이 땅에 진정한 평안이 임하고 남과 북이 하루빨리 평화통일을 이루도록 평화의 사도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탄예배에 앞서 한기총은 1사단 12연대 1소초에서 ‘독서카페’ 기증식을 가졌다. 독서카페란 일반전초(GOP)등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을 위한 컨테이너 형태의 휴식공간이다. 육군은 장병들이 자기계발과 취미활동을 할 수 있도록 후원을 받아 독서카페 건립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독서카페는 평균 33㎡(10평) 규모로 1000여권의 책과 6∼7개의 책상 및 의자 등을 놓을 수 있다. 앞서 1사단의 독서카페 기증에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각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번에 한기총이 기부한 독서카페는 12호다.
1사단 사단장 이종화 소장은 “독서카페가 장병들의 인성 함양과 병영 내 부조리 감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한국교회가 이 일에 힘을 보태준 것에 깊이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독서카페는 예배처소로도 사용될 예정이다. 1사단 군목 박상용 소령은 “GOP근무로 인해 대대교회에 가지 못하는 병사들이 주일에 모여 군종병사의 인도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