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난데없이 흉측한 모습을 드러낸 ‘괴물’ 세월호는 전 국민을 슬픔과 분노,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사고 현장의 애끊는 비보를 접할 때마다 전 국민은 집단적 우울증 속으로 빨려들었다. 속수무책이었다. 불가항력적인 충격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국민의 마음만 강타한 것은 아니었다.
암울한 경기침체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소상공인들은 세월호 사고 전후를 비교해 매출이 33% 줄었다고 응답했다. 또 절반이 넘는 소상공인들은 경기 침체가 4∼7개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 책임자 처벌, 정부 조직 개편, 피해자 보호·지원책은 가장 엄정하고 효율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이런 당위성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에 따른 서민들의 고통도 외면할 수 없다. 기하성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여의도순복음 총회 소속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27일 경기도 안산의 재래시장을 방문해 지역경제 살리기에 나선 것은 이 같은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이건 볶아 먹어도 맛있고 살짝 데쳐 먹어도 맛이 좋아요.”(야채 상인)
“싱싱하네요. 이거 2000원어치랑 옆에 있는 나물도 3000원어치 주세요.”(손님)
27일 오후 2시 경기도 안산 단원구 화랑로 라성종합재래시장. 한산하기 그지없던 시장이 인파로 북적이며 활기가 느껴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40일 만이었다.
‘호남분식’ 주인 황형준(52)씨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주방에 있는 가스레인지 3곳 모두 불꽃이 올라오고 있었다. 15석쯤 되는 테이블은 모두 찼다. 황씨는 “올 들어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시골밥상’ 간판이 달린 허름한 식당에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인데도 테이블에는 10명이 넘는 손님들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쉬이익 쉬이익∼’ 하며 압력밥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와 김이 주방을 가득 채웠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몰리자 식당 주인이 밥을 다시 안친 것이다.
이날 분식집과 식당을 가득 채운 손님들은 대부분 교회 성도들이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여의도순복음 총회 소속 목회자들과 장로·권사·집사 등 평신도들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을 비롯해 지역 경제가 침체됐다는 소식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자”며 총회 임원들이 결정한 고심의 산물이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인천순복음교회, 수원 제일좋은교회 등 수도권 5개 교회에서 2000명 가까운 성도들이 시장을 방문했다.
27년 전통을 자랑하는 안산 최초의 라성종합재래시장은 세월호 사고로 직격탄을 맞은 분위기였다. 상가연합회 등에 따르면 대부분 상가들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50%가량 줄었다. 일부는 간판을 내렸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길게는 수십 년간 마주했던 시장 상인들은 저마다 ‘이중고’를 감내하고 있는 듯했다. 경제적 어려움에다 마음의 상처까지. ‘신발백화점’ 주인 유수남(58)씨는 매출 얘기를 꺼내자 “지금 장사가 문제냐. 아직도 (세월호에서) 꺼낼 애들이 열 명도 넘게 남았는데”라며 버럭 화를 냈다. 사고 이후 하루 종일 뉴스채널을 틀어놓고 있다는 그는 “20년 넘게 신발을 팔면서 한 집만 건너면 이래저래 다 아는 사람들이 큰 시련을 당해 마음이 너무 아프다”면서 “지난달 초에는 단원고 선생님이 수학여행 간다고 여기서 신발을 사갔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홍어집을 운영하는 이향준(74)씨는 사고 이후 닷새간 TV를 켜지 못했다고 했다. 시장은 단원고에서 3㎞ 거리에 있다.
상인들을 마주하는 교회 성도들은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배우 같았다. 식당에서는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고, 건어물 가게 앞 주인 앞에서는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 흥정도 했다. 값을 치르며 헤어질 때는 밝은 얼굴로 “잘 먹을게요” “힘내세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날 시장 안팎에서 마주치는 성도들의 양손에는 크고 작은 검정 봉지들이 2∼3개씩 들려 있었다. 기하성여의도순복음 총회 측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시장방문에 소요된 비용이 약 4000만∼5000만원선으로 추산하고 있다.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한 이예재(65·여) 권사는 교회 동료 4명과 함께 시장 앞에서 6000원짜리 육개장을 먹고 저녁 반찬용으로 다시마 한 봉지를 샀다. 그는 “이곳에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엿보였다. 불과 며칠 전 교계 일부 목사들이 부적절한 언사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기 때문이다. ‘자칫 덕이 되지 못할까’ 하는 우려 속에서 성도들은 언행에 각별히 주의하는 표정이었다.
기하성여의도순복음 총회장인 이영훈 목사는 “이번 일은 우리 교단이 중심이 되어서 먼저 시작한 것이지만, 전국적으로 안산 살리기 운동이 확산되면 안산이 다시 희망을 찾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른 교단과 타지역 교회, 나아가 기업과 많은 단체들도 지역경제 살리기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성경에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구절과 함께 이런 구절도 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교회가 지역경제 살리기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바통을 이어받을 때다.
안산=박재찬 김동우 황인호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