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특별대담 - 위기에빠진, 기독교사학의 미래를 묻다2021-11-26
“공교육 확대도 좋지만 종교사학 자율성 존중해야”
■ 기독교 대학 상당수 탈락한 현행 대학역량평가의 획일적 기준 개선돼야
■ 한세대, 내년부터 입학생 ‘반값등록금’ 파격 지원, 전액 장학금도 검토
■ 교회 지원에 한세대 수시 10 대 1, 신학대학원 2 대 1 경쟁률 지원자 늘어
■ ‘초저출산’ 대처 위해 프랑스나 캐나다처럼 과감한 대학 통폐합 필요
■ 공교육에 선교사들 세운 학교 역할 커… 교회의 선한 영향력 회복할 것
학령인구 급감과 사립학교법 개정의 여파로 기독교 사학의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왼쪽)와 성공회 사제 출신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10월 27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GOODTV 스튜디오에서 만나 기독교 사학이 가야 할 길을 모색했다.
최근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과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역량진단평가 결과 기독교 학교 상당수가 정부 재정지원에서 제외된 것은 현재의 위기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기독교계에 새로운 도전적 과제를 안겼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으로 수년간 기독교계를 이끌었던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와 성공회 사제였던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만나 종교 사학의 미래를 고민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세대학교를 후원하며 기독교 인재 양성에도 사역하고 있다. 특별대담은 10월 27일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의 기독교복음방송(GOODTV) 스튜디오에서 이경직 백석대학교 기획부총장(신학대학원 교수, 조직신학박사) 사회로 진행됐다. [편집자 주]
이영훈 목사와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의 만남은 지난 9월 교육부가 발표한 ‘2021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가 계기가 됐다. 이 평가에서 전국 52개 대학이 정부 재정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 앞으로 3년간 정부의 일반재정지원사업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탈락한 대학 중에는 종교 사학이 많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운영하는 한세대와 이재정 교육감이 총장을 지내기도 했던 성공회대를 비롯해 ▷총신대 ▷협성대 ▷부산장신대 ▷한일장신대 ▷대신대 ▷KC대(옛 그리스도대) ▷평택대 ▷가톨릭관동대 등 10곳이다.
평가 방식에 관한 논란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지만, 학교마다 스스로 살길을 모색해야 하는 위기는 당면한 현실이다. 대다수 학교가 구조조정 등으로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는 데 반해, 한세대는 오히려 학생들을 위한 재정지원을 확대해 주목을 받았다. 한세대는 2022학년도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반값등록금’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학부와 대학원생 720여 명이 혜택을 받으니 작지 않은 규모다.
이경직 부총장(이하 사회자)_ 최근 한세대학교가 2022학년도 신입생 모두에게 등록금 절반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에 앞서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가 ‘코로나 극복 장학금’을 한세대에 전달했다.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됐나?
이영훈 목사(이하 호칭 생략)_ “코로나19 사태가 일 년 반 넘게 계속되면서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좌절하는 청년들이 많이 생겨났다. 학교가 살아 있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우리 교회가 그동안 후원해왔던 한세대부터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자, 고통을 나누자’는 입장에서 전 신입생에게 반값등록금을 제안하게 됐다. 특별히 주(님)의 종의 길을 가는 신학생들에게는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저들이 반값등록금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과 희망을 가져 사회를 밝게 빛내는 인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사회자_ 이재정 교육감께선 한세대 반값등록금 결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하 호칭 생략)_ “제가 이 뉴스를 보고 아주 놀랐다. 한세대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기쁜 소식인가. 아마 우리나라 대학 역사에 처음일 거다. 신입생들에게 반값으로 등록금을 주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건 아주 놀라운 일이다. 반값등록금은 꽤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이러한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학교가 그걸 하긴 어려워서 현실화하진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뜻을 모아 등록금을 반값으로 해준 건 학생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큰일을 하셨다.”
입학생 전원 ‘반값 등록금’, 한세대의 파격 실험
한세대는 의·진리·사랑을 교육이념으로 이론과 실무를 접목한 실용적 교육을 통한 전문가 양성이 목표다. / 사진:한세대학교
사회자_ 많은 대학에서 신입생 미충원 사태로 대학은 물론 지역 위기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피할 수 없는 현실일 텐데, 교육감이 일선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어느 정도인가?
이재정_ “대학의 위기는 곧 한국 교육의 위기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다. 지금 급감하는 게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고등학교 3학년 학령인구만 하더라도 2018년에 68만 명 조금 넘었는데 2023년, 불과 앞으로 2년 후면 2018년보다 20만 명 더 줄어든다. 6년간 20만 명이 줄어드는 것이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둘째로 대학이 모두 어렵지만 지난 15년간 등록금을 동결했다. 그래서 동결로 인한 수입 감소뿐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사회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사립학교는 더더욱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더군다나 졸업생들이 어디 취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 학생 충원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 작년에 사립학교 미충원 규모가 1만8000여 명이었다. 2024년이 되면 13만 명 정도 될 거로 예상하고 있다. 전체 대학 중 20~30개 대학이 문을 닫는 것과 같다. 이걸 극복하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가 될 거다.”
사회자_ 일반대학보다 기독교 사학은 더 큰 문제에 봉착했다. 사학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신규 교원 채용과 학교 운영에 지방정부와 단체의 영향력이 커졌다. 또 필기시험을 교육청에 의무 위탁하도록 하면서 건학이념에 맞는 교원 채용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영훈 목사께선 기독교 사학의 위기를 어떻게 보나?
이영훈_ “저도 중·고등학교를 미션스쿨을 나왔다. 과거에는 학교의 건학이념에 따라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학생들이 자유롭게 지원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런 배경에서 학교들이 세워지고 발전해왔는데, 시대가 바뀌고 교육의 공교육화를 추구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현행 사립학교법에 따라 사립 초·중·고 교사를 채용할 때 임용권자의 고유 권한을 교육청에서 관리하도록 하게 됐다. 그렇다 보니 기독교 가치관을 가지지 않은 단체와 기독교 단체 간에 충돌이 생긴다.
이런 부분은 독립적인 자문기구를 만들어 학교의 건학이념과 자율성을 최대한 배려해 결정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야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 천주교 계통 학교에서도 종교 자유가 침해받지 않을 수 있다. 이건 평등권의 문제로 인식하고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사를 뽑을 때도 그렇고 학교 교육과정을 운영할 때도 그렇다. 그 학교가 가진 특수성, 학교의 설립이념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게 맞지 않나. 평등이라 함은 각 사람에게 있는 고유한 재능, 여러 가지 가치관을 인정해주는 상태에서 출발한다. 하나의 룰을 정해놓고 다 따르라는 것은 평등이 아니라 획일화다. 그런 부분을 교육계에서 심각하게 다뤄줬으면 좋겠다. 저는 이재정 교육감이 경기도에서 그런 문제가 되는 건 잘 풀어주시리라 생각한다.”
“다양한 가치관 인정 않는 룰은 획일화”
9월 2일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한세대학교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가 마련한 코로나 극복 장학금을 전달했다. 교회 측은 한세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반값 등록금을 지급했다. / 사진:한세대학교
이영훈 목사의 말처럼 기독교계의 우려를 대표하는 사건은 2004년 서울 대광고등학교에서 벌어진 강의석 군 제적 사건이다. 강군이 채플(종교수업)을 거부하며 1인 시위를 벌이자 학교 당국은 제적으로 맞섰다.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이 강군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지만, 종교 사학에서 학생의 종교 자유에 관한 논쟁이 불붙은 계기가 됐다. 이후 여러 기독교 재단 학교에서 채플 의무수강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영훈 목사는 “사학의 건학이념을 무시한 획일화 교육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사립학교 교원의 채용 공정성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법이 개정됨에 따라 내년부터 사립학교에 지원하는 교사 임용 후보자는 사학이 아닌 교육청이 출제한 필기시험에 응해야 한다. 교원 선발권이 교육청으로 넘어감에 따라 기독교계의 고민과 반발이 유독 크다. 예를 들어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신천지나 구원파 신자가 교원으로 채용될 경우 기독교 사학의 본질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기독교계에선 이미 일선 교회마다 겪고 있는 이단 분파 갈등이 기독교 학교로 확산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또 사학의 공교육화가 강화되면 기독교 이념을 바탕에 둔 교육 전통이 희석될 거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경우는 다르지만, 1948년 장로회 신학교로 출발한 안양대학교 재단이 2019년 대순진리회 계열(대진성주회)로 매각을 추진해 기독교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재정_ “사학법 개정 내용에 대한 오해가 있다. 우선 학교에서 성경을 못 가르친다는 건 전혀 그렇지 않다.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교과 운영에서도 성경을 가르치거나 종교 활동하는 것을 교육청이나 정부에서 제한하지 않고 있다. 사립학교의 가장 큰 어려운 점은 학생이 줄어들기 때문에 학급 수가 줄어들고, 학급 수가 줄어들면 교사 정원이 줄어든다. 그래서 과원이 생기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거냐, 법인은 법인대로 교원 정원이 줄어드는데 계속 둘 수도 없고.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큰 현안 과제다.
또 다른 현안은 어떻게 교원 선발의 공정성을 확보할 것이냐의 문제다. 최근에 한 사립학교 재단에서 교원을 채용하면서 한 번에 36명을 잘못 뽑아서 사법당국의 제재를 받고 몇 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사립학교의 영예, 그리고 기독사학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채용 과정을 좀 더 공정하게 할 수 없겠느냐는 고민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교사를 채용할 때 공립학교는 통틀어서 국가가 정한 원칙대로 시험을 본다. 이때 교육청 단독으로 하지 않고 교육청들이 공동으로 진행하는데, 사립학교는 일부 우리한테 위탁을 해오면 우리가 받아서 시험을 대신 치러주는 식으로 진행해왔다. 지난해에는 경기도의 44개 학교 가운데 자체 채용한 학교가 14개였고, 위탁해온 학교가 30개였다. 자체 채용보다 위탁을 많이 한다. 올해에도 전체 38개 학교 중 자체 채용이 10개, 위탁 채용이 28개였다. 우리는 사립학교 채용 시험만 관리하는 것이지 지망자격 자체를 제한하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학을 국가 권력으로 좌지우지하는 건 전혀 아니다. 다만 학교 스스로 공정하게 하기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 필기와 면접시험을 한 단계로 묶어서 관리해주는 것뿐이다. 그 성적을 갖고 누구를 뽑을지는 이사회의 권한이다.
사학법 개정에 기독교 교육 전통 무너질까 우려
김규원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장이 9월 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1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최종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재정지원에서 탈락한 4년제 대학 25곳 중 10곳이 기독교 계열 대학이었다. / 사진:연합뉴스
마지막으로 교원에 대한 지원은 국가가 거의 공립학교처럼 똑같이 지원한다. 인건비는 물론이고 시설비까지 마찬가지다. 체육관이나 강당을 짓거나, 학교의 소소한 수리, 개선비까지도 다 공립학교와 차이 없이 사립학교에 지원한다. 다만 문제는 일부 사립학교 법인 가운데 법정전입금을 부담하지 못하는 곳이 상당수에 이른다.
한세대학교는 모범적인 법인이지만, 기독교계가 운영하는 학교 중 상당수가 법정부담금을 부담하지 못해서 여러모로 법률적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제재 방법이 지원금을 줄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원금을 줄이면 그 피해가 법인에 가는 게 아니라 교육의 부실, 즉 학생에게 간다. 그래서 무조건 지원금을 줄이기보다 사학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교원으로 선발되면 공립학교나 사립학교 구분 없이 똑같은 교원 자격을 얻게 된다. 처우도 같다. 정부와 교육 당국이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교원 선발 기준이 같아야 한다고 보는 이유다. 특히 그동안 학교마다 선발 과정이 차이가 있고, 채용 과정에서 부정이 발생하기도 해 공정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에 따라 교육청이 시험을 대신 관리하는 위탁제도가 시행됐다. 교육청에 선발 시험을 위탁하는 학교는 증가 추세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채용 시험 위탁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한 2017년에는 25개 학교 중 5개 학교에 불과했다. 이듬해부터 늘기 시작해 2018년 33개 중에 10개 학교, 2020년도엔 44개 중 30개, 올해에는 38개 중 28개 학교가 위탁해 교원 선발을 진행했다. 이재정 교육감은 “과원이 발생했을 때 공립학교 교원으로 전환해주는 게 유일한 방법인데, 임용 과정이 다르면 공립으로 전환할 때 어려움이 있다”며 “사학의 자율성과 정신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공정성을 보장할 방법을 깊이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자_ 대학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세대와 영산순복음신학교를 통해 교육에 헌신하고 있다. 직접 학교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가장 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이영훈_ “저희가 직접 운영하는 건 아니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에서 학교를 위탁받아 1989년부터 지금까지 후원해오고 있다. 약 30년간 550억원 규모의 재정을 지원해왔다. 교회는 건학이념에 따라 학교가 잘 운영되도록 도우면 된다. 학교 운영에 있어 실질적인 권한은 학교 자체의 고유권한이다. 학교 운영까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교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구성원들이 한마음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교수, 학생, 직원이 한마음으로 뭉치고, 동문회가 돕고, 이사회가 뒷받침해야 하는데 최근에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법인 이사 중 뜻을 달리하는 분들이 학교 운영방향에 다른 의견을 내면서 학교 내 갈등이 깊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학교는 정상적으로 잘 발전하리라 믿는다.”
“학교별 특성 고려 안한 획일적 평가 문제 있어”
구한말 기독교 학교는 독립운동가들의 산실 역할을 했다. 이화학당에서 수학할 당시 유관순 열사(둘째 줄 오른쪽 끝)와 동문들. / 사진:독립기념관
사회자_ 여기에서 아픈 부분을 짚어봐야겠다. 이번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에서 공교롭게도 이재정 교육감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성공회대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중심이 돼 설립한 한세대가 낮은 평가를 받아 정부 재정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이재정_ “대학 평가제도는 1990년대에 도입됐다. 당시에는 대학이 모두 참여하는 한국대학교협의회가 평가 권한을 갖고 있었다. 대학별로 자체 평가한 연구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면 대학교육협의회가 연구보고서 자체에 대한 평가와 현장 실사를 진행했다. 저도 당시 성공회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대학교육협의회 이사를 맡아 자연스럽게 평가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학 스스로 평가하는 것은 전 세계의 일관된 경향이다. 그런데 이게 교육부로 이관이 되면서 교육부가 직접 평가 시스템을 만들었다. 대학마다 규모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전통도 다른데, 하나의 잣대로만 평가하면 공정성을 잃는다. 동일한 잣대로 하면 절대 안 된다.
외국의 경우 대학을 평가할 때 규모 면에선 의과대학을 가진 대학이 굉장히 크니까 의대가 있는지가 하나의 기준이 된다. 또 위치도 기준이 된다. 학생 규모도 마찬가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다양한 기준을 갖고 대학의 특성을 살려내는 평가가 돼야 하는데, 획일적인 평가 기준을 적용한 결과가 이번 평가로 나타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몇몇 학교를 탈락시키는 평가가 대학을 정말 발전시키려는 목적에 부합할까? 저는 그렇게 안 본다. 획일적으로 학교당 연간 51억원, 3년간 150억원씩 지원하는데, 규모에 따라 51억원이 굉장히 큰 대학도 있겠지만 대단치 않은 곳도 있을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대학을 관리할 게 아니라 각자의 건학이념이나 지역 발전을 위한 학문적 기여, 혹은 사회발전을 위한 여러 활동을 통해 대학을 어떻게 살려나갈 것인가가 목적이 돼야 한다. 자꾸 학생 수가 줄어드니까 대학을 줄이고 지원을 줄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구한말 선교사가 서울시 중구 정동에 세운 이화학당의 졸업식 풍경. 오른쪽으로 덕수궁 너머 러시아공사관이 보인다.
이영훈_ “교육감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획일적인 평가로 인해 전국에서 52개 대학이 탈락했는데, 그중 상당수가 기독교 대학이다. 기독교 대학의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기독교 대학이 각 교단에서 운영하는 신학 중심 중소 대학이다. 중소 대학을 일반 대형 종합대학의 평가 기준과 똑같은 틀로 평가한다면 당연히 일반 종합대학보다 모든 면에서 기준에 못 미칠 수밖에 없다. 한세대의 경우 일부 이사의 파행과 같은 사소한 문제가 전체 평가에 영향을 미쳐서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다. 실제 피해는 학생과 구성원이 보게 됐다. 앞으로 기준이 바뀌어서 학교의 규모와 특수성, 건학이념 등 학교 나름의 특성을 인정하는 상태에서 평가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재정_ “대학을 살리고 더 발전시키는 평가가 돼야 한다. 그리고 평가를 통해 대학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 파악해서 대학이 풀 수 있는 건 대학에 맡기고, 정부가 도울 일은 돕고, 지역사회와 법인이 역할을 하도록 해 학교를 살려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평가 내용 자체도 말이 안 된다. 성공회대에 왜 떨어졌냐고 물어봤더니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소통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 모르겠지만, 납득이 잘 안 된다. 정성평가가 갖는 주관적 성격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기독교 사학들이 한층 더 어려움에 부닥치게 된 게 아닌가. 교육부가 다시 한번 이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세대 입학생에 전액장학금 지급도 검토 중”
지난 8월 31일 사립학교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한국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학법 개정안 통과를 규탄했다.
사회자_ 한세대를 어떻게 살릴 건지 구상이 궁금하다.
이영훈_ “교육감 말씀 중에 답이 다 나왔다.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 구성원이 힘을 합쳐서 발전 계획을 세우고, 법인도 최대한 역량을 발휘해 학교 발전을 돕고, 대학에서 지역사회와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더욱 활성화한다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게 될 거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더불어 발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에서도 더 많은 지원책을 갖고 후원해야 한다. 어느 한두 사람의 일이 아니라 다 같이 협력해서 학교 발전에 힘을 모아야 한다.
교회에서도 더 많은 지원책을 갖고 후원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입학생 전원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는 것을 연구하고 있다. 한세대 정원이 600명 정도니 매번 24억원 정도 예산이 필요한데, 재정 확보 방안을 연구하는 중이다. 설령 학생 전원에게 못 주더라도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 지방에서 올라와서 점심도 못 먹고 굶는 학생들에게는 학비 전액을 지원할 대책을 세우고 있다. 문제는 풀라고 있는 것이고, 어려움은 극복하라고 있는 거다. 우리가 문제를 풀어가고 어려움을 극복하면 더 발전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자_ 앞서 언급했듯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이영훈 목사께선 문제가 뭐라고 보나?
이영훈_ “사학법 개정안이 일방적으로 기독교 정신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재정 교육감께서 많은 오해를 풀어주셨다. 다 같은 교사로서 교육 공무원과 같은 대우를 받으려면 평준화된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기독교 사학의 설립 이념과 가치관이 훼손되지 않는다면, 사학법 개정에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좋은 쪽으로 중지를 모아서 발전시켜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육이란 것은 나라에서 막대한 재정 지원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장해서 되는 게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윈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기독교 사학의 설립 이념과 정체성이 훼손되는 사학법 개정은 시도돼선 안 된다.
“고교 학점제 시행되면 학교 자율 높아질 것”
2017년 3월 7일 한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입학식 및 개강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 사진:한세대학교
그리고 모든 교육 평가와 학교 통제를 교육부가 총괄하고 있는데 이것도 바꿀 필요가 있다. 미국처럼 전문 평가 기관에 권한을 위임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미국의 경우 대학평가기관이 지역별로 6개가 있는데, 여섯 지역에 있는 교육 평가 기관에 교육부에서 모든 평가 권한을 위임했다. 각 지역 평가기관에서 학력 인정 평가와 감독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교육부가 획일적으로 학교의 특성과 건학이념을 무시한 채 교육부의 일방적인 잣대로 평가할 게 아니라 전문 평가 기관을 만들어 그 권한을 모두 위임해야 한다. 전문 교수들로 구성된 평가 기관에서 만든 기준으로 학교를 평가하면 훨씬 나은 교육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재정_ “법이라는 건 엄격하게 적용할 때 예외를 두지 않고 일방적으로 적용되니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사학법 시행령을 만들면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금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폭이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계가 같이 힘을 모아서 대통령령을 제정할 때 참여해서 사학의 정신을 더 반영할 수 있는 길을 열어내면 훨씬 더 좋은 방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사학법 개정을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법을 시행하는 원칙들을 어떻게 바꿔나가느냐 하는 것도 기독교계의 책임이 아닐까. 건학이념과 기독교정신을 교육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학교 자치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이 가진 문제는 학교 자치가 굉장히 뒤처져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교육계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로 2023년부터 고교 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고교 학점제가 실시되면 각 학교가 갖는 특성을 반영한 교육과정을 학교가 자율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진다. 가령 성경을 몇 시간 가르칠 것이냐는 학교가 선택할 일이지 법이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런 것도 학생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훨씬 더 열린교육이 되리라 본다. 그런 면에서 학교 자치가 굉장히 중요하고 논의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진 교육부에서 교육청을 통해 학교에 하달하는 하향식 체제였지만, 앞으로 지역과 학교의 특성을 살려서 학교의 자치력을 강화해 나가는 방식으로 바뀐다면 사회발전에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사회자_ 교육현장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달라.
이영훈_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한다.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나라의 미래가 결국 교육에 달려 있기에 교육정책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는 우리가 모두 중지를 모아 최고의 교육으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특별히 저는 기독교 사학의 후원자로서 기독교 사학이 가진 건학이념과 가치를 존중하면서 그들이 가진 최대의 능력을 개발시킨다면 바람직한 교육을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역 대학에 교원 복수전공 과정 운영하면 윈윈”
한세대는 교회 목회자 양성을 위해 설립된 학교다. 한세대에서 제2, 제3의 조용기 목사 같은 분이 계속 배출돼 세계교회 부흥과 선교에 크게 기여하는 인물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특별히 신학대학원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목회자 양성에 차질이 없도록 하려고 한다. 또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공동 파트너로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한 통합과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준비하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가 되고자 한다. 다행히 한세대는 반값 등록금 지원으로 수시에서 10 대 1, 그리고 신학대학원은 2 대 1 경쟁률로 지원자 수가 많아져 미래 전망이 매우 밝은 편이다.”
이재정_ “교육감으로 선출돼서 활동한 지 만 7년 지나고 임기가 거의 끝나간다. 이 과정에서 세 가지 중요한 걸 느꼈다. 우선 어떻게 하면 학생 중심의 교육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다. 학교나 교사나 모든 체제가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학생의 관점에서 교육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로 사립학교의 문제다. 우리나라 교육은 공립학교가 만들어지기 전에 사립학교로 시작했다. 특히 기독교 학교는 우리나라의 교육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그런 과거를 반추하고 오늘날 사립학교의 위치와 역할을 다시금 정립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에 248개 사립학교에 지원해준 금액이 1조1000억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인건비고 운영비와 학교 시설비도 지원하고 있다.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사립학교라 하더라도) 결국 학교의 공공성을 살리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셋째는 경기도 교원 중 기간제 교사만 13만 명에 달한다. 그중 복수전공을 가진 분은 3%밖에 안 된다. 교원들을 빠른시간 내에 복수전공을 시켜서 앞으로 대세가 될 융·복합 교육을 할 수 있는, 미래 교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많은 교원 전체를 다 재교육해서 복수전공을 하려면 대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경기도면 경기도 안에 있는 전체 대학을 다 활용하자는 생각이다. 그 지역에 있는 교사들은 해당 지역의 대학에서 복수전공을 하고 학위를 받게 되면 대학에도 도움이 되고 교사의 역량도 훨씬 강화되지 않을까. 국가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추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영훈_ “예전 유학 시절, 독일의 대학생들이 데모를 벌인 적이 있었다. 1년에 48달러 학비를 부담하게 하자 학생들이 들고일어난 거다. 독일의 경우 학비를 거의 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게 원칙으로 뿌리내렸다. 국가 재정이 튼튼해서 공부하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대학에 갈 수 있게 하고 전액 지원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다. 우리나라가 모든 인프라를 잘 갖추고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서 발전했는데, 저출산 문제와 교육에 있어선 더 과감하게 투자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하다.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재정_ “앞서 언급한 교원 재교육의 경우 전국의 교사들을 재교육하려면 약 16조원이 들어간다. 교육 예산이 많다고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학급당 학생 수가 28명으로 줄었는데, 시설 확대는 그렇다 해도 추가로 필요한 교원이 경기도에서만 4000명에 이른다. 그런데 정부가 충원에 인색하다. 결국 기간제 교사로 채워야 하니, 문제가 많다.”
사회자_ 초저출산 문제에서 비롯된 학교의 위기도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뾰족한 방법이 없을까?
이영훈_ “초저출산이 계속되면 15년 뒤에는 대학교의 절반이 문을 닫아야 하는 초유의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지금부터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큰 재앙을 맞게 될 거다. 이에 대한 대비책의 하나로 프랑스나 캐나다처럼 과감하게 대학을 통폐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국의 대학들을 2~3개 단위로 통합해 경쟁력 있는 학과를 살리고, 정원을 늘리기 위해 불필요하게 신설했던 학과는 과감히 관련 학과로 통폐합함으로써 대학이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 또 한국 교육이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는 교육부 주도의 관제주의적 교육과 학교의 자율성이 어떻게 절충점을 찾고 조화를 이뤄 세계적인 교육 국가로 거듭나느냐는 것이다.”
“인구절벽 대비하려면 대학 통·폐합해 경쟁력 향상 필요”
사립학교법 개정이 추진될 때마다 종교계는 종교 사학의 건학이념을 해체하고 학내 갈등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반발해왔다. 2006년 12월 19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천주교 대표단이 국회 기자실에서 사학법 재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목사가 예로 든 프랑스의 경우 2005년부터 ‘연구와 고등교육 거점’을 목표로 삼아 대학 간 상호교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구조화를 진행해왔다. 재구조화는 여러 개의 대학과 연구기관을 통합해 단일 이사회로 묶는 ‘대학공동체’(일종의 통합대학),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 있는 하나의 네트워크를 갖춘 ‘연합’의 형태로 구분된다. 2018년부터 교육기관 연합을 시범적으로 실시한 결과 전국적으로 대학공동체 17개, 연합 형태 7개, 통합 2개 등으로 상당수 대학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러 연합·통합 대학이 세계 대학 평가에서 최상위권에 오르는 등 실력 향상 효과가 뒤따랐다.
이재정_ “학령인구 감소는 5년이나 10년 뒤에는 매우 심각해진다. 경기도에서만 해마다 수천 명씩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에선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 교사는 왜 자꾸 늘어나냐고 한다. 초·중·고등학교의 경우 공립학교는 학급 당 인원수를 조정할 수 있는데 사립은 우리가 조정할 수 없다. 사실 학급당 인원수로 따지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교사가 훨씬 더 늘어야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교육재정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국가적 과제다. 나는 국립대학뿐만 아니라 사립대학도 동등한 위치에서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영훈_ “한국 개화기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였고, 기독교 역사 중심에는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가 있었다. 기독교 학교가 나라의 역사와 발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기독교 대학들이 나라의 미래와 발전을 책임지고 힘써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초기에 가졌던 선한 영향력을 우리가 많이 잃어버려서 지적을 받고 있으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하고, 초기 모습으로 돌아가서 한국 기독교 사학들이 한국 사회의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고 미래를 발전시켜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길 소망한다. 교육 당국도 종교 사학의 건학이념과 정체성을 우선적으로 존중해주길 바란다. 최대한의 자율성을 인정해주는 것만이 종교 사학이 살아남는 길이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inkyu@joongang.co.kr / 녹취 정리 손준영 월간중앙 인턴기자